식탐 쩌는 시누한테 머리채 잡혔어요.


 
 
신랑보다 네살 어리고, 저보다 두살 어린 시누가 있습니다.
나이는 32살이에요. 쳐먹을 만큼 쳐먹은 나이죠.
그런데 오늘 시누한테 머리채 잡혔습니다. 진짜 황당해서 아직도 손이 다 떨리네요.
 
원래 식탐이 어마어마하게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말로는 어려서 할머니가 오빠(우리 신랑)만 이뻐하고 맛있는건 다 오빠 줘서 그런거라는건데
시부모님은 언제 할머니가 너랑 오빨 그렇게 차별했느냐며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하시네요.
그냥 매사에 욕심이 많은데 식탐에서 유독 더 한 사람 같습니다..
 
처음 인사 갔을때 제가 탕수육 좋아한다고 했더니 어머님이 손수 튀겨서 해주셨었어요.
사실 맛은 정통 중국요리 집만큼 맛있지는 않았지만 그 정성이 너무 감사해서 일부러 많이 먹었죠.
근데 먹던 중에 갑자기 시누가
“생각보다 많이 먹네요? 오빠 데이트할때 식비 많이 들었겠다.” 라고 하는 겁니다…
괜히 분위기 싸해지게 만들기 싫어서 그때는 기분 나빴지만 티 안내고
“어머님이 너무 맛있게 해주셔서 저도 모르게 많이 먹었나봐요.” 했죠.
그때 신랑도 그러게 얘 이렇게 많이 먹는거 진짜 첨 본다고 말 보태줬구요.
그랬더니 어머니도 기분 좋아지셔서 많이 먹으라고 제 앞접시에 더 덜어주시고 하셨는데
그걸 보더니 숟가락으로 탕수육을 푹푹 퍼 가던 시누의 야생동물 같던 행동을 잊을수가 없습니다.
 
그 이후에도 저희 결혼식 때 뷔페에서 연어는 혼자 다 싹쓸이 해가서 다른 하객들 기다리게하고..
어머님이 저희 친정 명절 선물로 진짜 과즙 뚝뚝 떨어지는 최상급 과일상자 주문해 두셨는데
그거 자기 공방에(포슬린 강삽니다.) 들고 가서 모른척 하다가 상자 안치워서 딱 걸리고.
아버님 생신에 다 같이 돼지갈비 먹으러 갔는데 가는 내내 생신이면 소를 드시지 왜 돼지냐고
찡얼찡얼 거리다가 아버지 몸에 소 안받아서 안 먹는거 알면서 왜그러냐고 오빠한테 한소리 듣고,
막상 가서는 제가 요즘엔 돼지고기도 너무 푹 익혀 먹으면 맛 없다고 적당히 구워졌을때
드시라고 시부모님 고기 잘라 드렸더니 갑자기 안된다고 돼지는 다 익혀야 한다고 역정내더니
지는 아직 다 익지도 않아서 겉에 양념 고기랑 따로 놀때 먹질 않나…ㅋㅋㅋㅋㅋㅋ
빨리 구워진거 자기 부모님 입에 들어가는것도 아까웠나봐요.
어머님 생신때는 겨울이라 대방어가 한창 철이라 좋은거 하나 잡았거든요.
대방어 아시겠지만.. 다섯명이서 한마리 먹으려면 많아요ㅋㅋ 큰거는 진짜로
그래서 반마리만 뜰려고 했는데 궂이 궂이 한마리를 다 잡재서 잡았더니
정말로 그 많은걸 혼자서 거의 다 먹더니… 결국 집 오는 길에 차 세우고 토했어요.
 
암튼 저런 사람인데.. 막 자주 같이 식사하는건 아니니까 크게 불만은 없었어요.
음식이 모든 식구가 다 먹을만큼 양이 많아도 옆 사람 젓가락질 하는것도 눈치보이게 할 정도로
먹는거에 무슨 승부욕이라도 부리는 느낌이긴 했지만… 가끔이니까. 한달에 많아봤자 두번..?
근데 최근에 저희 친정에서 키운 옥수수랑 감자 때문에 제가 오늘 머리채를 잡힌거에요..
 
저희 부모님이 귀농하신지 이제 4년차에요. 그 전에는 서울에서 두분다 직장 다니셨구요.
엄마는 원래 서예 선생님이셨구요, 아버지는 러시아어 교수님이셨어요.
제가 삼남매 막내딸인데 저 시집 보내고 숙제 다 하셨다고 진짜 순식간에 내려가셨어요.ㅎㅎ
가셔서 사실 수익은 농사로 내시는건 아니고 엄마는 숲 해설 하시면서 소일 하시고
아버지는 책 쓰신거 인세도 원래 나오는게 좀 있고, 힘들지 않을 정도의 번역 일 같은거 하세요.
주로 러시아 일간지, 월간지 주요 기사 번역 외주 들어오는 거 좀 하시는 정도?
이런 두분이 농사일 얼마나 손에 설으시겠어요. 기대했던거에 반도 수확 못하셨대요.
그래서 좀 아쉽기는 하지만 내년엔 더 잘할거라고 웃으면서 말씀하시는데
서울에 계실때보다 더 건강해 보이시고 행복해 보이셔서 참 좋았어요.
좀 적게 수확됐다고는 하지만 저번에 내려가니까 자식들 먹인다고 한봇짐씩 해놓으셨더라구요.
그 봇짐도 꽤 양이 돼서 시댁에도 좀 가져다 드리자 하고 충남에서 바로 시댁으로 갔거든요.
어차피 시누는 시부모님이랑 떨어져서 혼자 사니까 시댁에 감자랑 옥수수 좀 넉넉히 드리면서
시누 오면 먹을만치 챙겨 주시라고 말씀드렸어요. 저도 우리 아들 이제 중기2단계 이유식 중이라
감자며 옥수수며 요긴하게 잘 쓸거 같아서 살짝 양 욕심낸거 있기는 해요.
 
그러고 한 3주 지났나요?
지난 2주간 시어머니가 감기 때문에 고생하신데다가 애기 감기 옮을까봐 못보셨거든요.
근데 이제 다 나으셔서 제가 오늘 애기 데리고 어머님 몸 쇄하셨을 것 같아서
낙지 사서 연포탕 끓여 드리려고 했어요. 칼칼하게 드시고 싶다고 하셔서.
갔더니 어머님 아기 보자마자 좋아서 어쩔줄 몰라 하시고 연포탕 할꺼라고 하니까
아버님은 본인이 하신다면서 굵은 소금 꺼내서 낙지 손질하기 시작하셨어요.
근데 그러는 중에 시누한테 전화가 왔어요. 어머님은 신나셔서 점심에 새아가가 연포탕해준댔다고
지금 손주도 와 있는데 2주 사이에 또 금방 컸다고 소녀처럼 수다 떠시더라구요.
그렇게 연포탕 한창 끓여서 어머님 아버님 드리고 전 먼저 아들 이유식 먹이고 있었어요.
어머님이 아기 주고 너 밥 부터 먹으라고, 이유식 본인이 먹이신다고 하셨는데
아이가 요즘 한창 낯을 가려서 제가 주는 거 아니면 먹으려고를 안해서요…ㅠㅠ
그럼 아기 이유식 먹고 다 같이 먹자 하셨는데 그때도 애기 안고 있어야 하긴 할거고
이미 점심때가 조금 지난 상태라 어른들 시장하실까봐 극구 그냥 먼저 드시라고 했어요.
그렇게 냄비에 제 연포탕 1인분 남긴 채로 있었는데… 시누이가 나타났네요. ㅡㅡ
 
온단 말도 안했는데… 갑자기 나타나서는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더니 냄비부터 열어요..
그러더니 뭐야, 이거밖에 안남겼어? 하면서 당연하다는 듯이 본인이 가져다가 먹네요… 헐…
시아버지가 그거 애미 건데 니가 왜 먹냐고. 시간이 몇신데 넌 밥도 안먹고 다니냐 했더니
듣는채로 안하고 그냥 연포탕 국물에 밥부터 말더라구요… 뭐 놀랍지도 않았네요.
누가 뺏어 먹으려는 것도 아닌데 허겁지겁 먹는거 보니까 저도 밥맛이 좀 떨어져서
어머님이 식사 다 하시고 밑반찬에 밥 따로 차려 주시겠다는거
냉장고 열어보니까 전에 친정에서 가져온 옥수수 삶아서 넣어 두신게 있길래
저 간단하게 옥수수 먹고 싶다고 하고 그거 전자렌지에 데우고 있었어요.
 
근데 또 거기다 대고 웬 옥수수야? 하더라구요. 눈을 반짝이면서..
그래서 시어머니가 니것도 따로 새언니가 챙겼다고 이따 집에 갈때 가져가라 했죠.
그러니까 제가 전자렌지에 돌리고 있던 옥수수에서 좀 욕심을 버리는 것 같더라구요.. 무서워라..
그래서 전 옥수수 삶은거 하나 어머님이랑 TV보면서 야금야금 먹고 신랑한테 퇴근하면
데리러 오라고 전화 넣고 반쯤 졸면서 애기 보고 있었어요.
저녁에 수업 있다고 시누가 먼저 일어나서, 옥수수랑 감자를 시어머니가 챙겨 주시는데
갑자기 어이가 없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더니 뭐하자는 거야? 라더라구요.
아까 보니까 옥수수 알도 굵고 하던데 왜 자기 주는거는 다 작냐고. 감자도 알이 너무 작다고.
 
맞아요. 옥수수나 감자가 시장에서 파는 것 보다 알이 많이 작긴 했어요.
농사에 익숙치 않은 두분이 지으신건데 막 상품성이 좋은 작물이랑 비교야 당연히 되죠.
제가 먹던 옥수수가 더 알이 크다는건ㅋㅋㅋㅋㅋ 삶았으니까 더 크죸ㅋㅋㅋ
생 옥수수 당연히 더 말라 보이죠.. 근데 내가 먹던건 알이 컸다고 난리..
갑자기 고모 목소리가 커지니까 아들은 울기 시작하고, 시누는 계속 왜 난 이런거 주냐 뭐라하고.
나머지도 다 마찬가지다. 네거라고 더 작고 그런거 없다 해도 계속 씩씩 대는거에요.
애는 울지, 다 큰 시누는 더 크게 찡얼거리지, 시어머니는 기운 없으셔서 한숨만 쉬시지
마침 시아버지는 담배 태우시러 잠깐 밖에 나가셨지…
진짜 집이 시끌시끌 너무 정신이 없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결국 못 참고 한마디 했어요.
아가씨 제발 식탐 좀 그만 부리라고. 도대체 다 큰 어른이 왜 그러냐고.
그 옥수수, 감자 우리 친정부모님이 서툰 실력으로 키우셔서 그렇게 알이 작은건데
민망하지만 이거라도 나누시겠다고 챙겨주신건데 그 정성을 좀 봐주면 안되는 거냐고.
더 큰 옥수수, 감자 드시고 싶으시면 아가씨 돈으로 그냥 사드시라고.
이거 그냥 가져가지 마시라고. 우리가 다 먹을거라고.
 
저도 갑자기 순간 욱하고 터진거라 말하면서도 이게 내가 말하고 있는게 맞나 싶긴 했어요.
그 말 끝나고 나니까 시어머니도 너 내가 언젠가 한소리 들을 줄 알았다! 하시고는
우는 애기 안고 베란다로 나가셨어요. 저도 더이상 대꾸할 가치가 없는 것 같아서
신랑 오기 전에 짐 챙겨 놓으려고 거실로 다시 돌아가는데..
갑자기 시누가 제 머리채를 잡더니 바닥에 내동댕이를 치는 겁니다.
시어머니도 놀라셔서 달려오시고 아기 혼자 둘수는 없어서 내려놓지도 못하시고
그 와중에 저는 애기 다칠까봐 어머니!! 가까이 오지 마세요!! 애기 다쳐요! 그러고 있고
시누는 제 머리 잡고 계속 흔들고.. 결국 아버님 들어오셔서 시누 싸대기 때린 후에야 멈췄어요.
 
저 너무 놀라서 벌벌 떨고 안방으로 피신 오고, 그렇게 한참 분해서 울고 있는데 신랑 왔구요.
신랑 오자마자 바로 짐 챙겨서 집에 오는 길에 계속 울고… 신랑은 무슨 상황인지 몰라서
벙쪄 있다가 전화로 시아버지한테 얘기 듣고 완전 표정 굳어서 아무말 안하더니
미안한데 집에 먼저 들어가라면서 저랑 애기 집에 내려 주고 어디 갔어요.
아마 시누 죽이러 간거 아닐까 싶어요.
 
집에 와서 애기 놀라서 경기 했을까봐 좀 들여다보고 재우고 나니까 저도 이제 정신이 드네요..
아 진짜 미친 시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시아버지도 손 대셨고, 신랑도 지금 전화는 안받는데 정말 제대로 화난거 같은데
시어머니는 본인이 자식 잘못 키웠다고 미안하다고 톡하시고..
그래도 화가 안풀려요.. 저도 같이 머리채 잡았어야 하는데 왜 난 덩치가 이렇게 작을까.. 하..
진짜 어디 쪽팔려서 이야기도 못하겠고
서른 넘은 여자가 식탐때문에 머리채 잡았다는 이야기 누가 믿어주지도 않을거 같고..
너무 답답해서 여기다가 이렇게 글써요…
진짜 어이 없어서 이제 웃음밖에 안나오네요..

What's Your Reaction?

뭉클 뭉클
0
뭉클
하하 하하
0
하하
무서워 무서워
0
무서워
슬퍼 슬퍼
0
슬퍼
화나 화나
0
화나

Comments 1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로그인

Don't have an account?
회원가입

비밀번호 변경

Back to
로그인

회원가입

Back to
로그인